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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축구선수의 말 그리고 인심
최동호 스포츠평론가  |  faith00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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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5  1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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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저널=최동호의 스포츠인문] 말은 때때로 흉기이기도 하고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는 재산이기도 하다.

인간사에서 말로 얽힌 흥망이 오죽 다반사였으면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처럼 말에 얽힌 속담이 부지기수일까. 흥하든 망하든 공통점은 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심은 참 묘해서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들을 때가 많다. 아는 것만큼 보이는 것처럼 필요한 대로 알아듣는 경우도 많다. 때론 필요한 대로 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참으로 못된 짓이다.

국가대표 김영권이 설화를 당했다. 하룻밤 사이 만고의 역적으로 지탄을 받았다. 이란전 직후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 그대로다.

“관중 소리가 크다 보니까 경기장 안에서 사실 소통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소리 질러도 잘 들리지도 않고 소통을 저희가 계속 연습해왔는데, 그 부분이 잘 들리지 않아서 너무 답답했고 그리고 우즈벡 가서도 이런 상황이 또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눈빛만 봐도 알 수 있게 준비를 해야 될 거 같아요.”

내겐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기자가 “경기 중에 어떤 점이 어려웠나”라고 물었다 하니 “관중 함성이 너무 커 소통이 잘 안됐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선 잘하겠다”로 대답한 것으로 들린다. 그런데 탈이 났다. 필요한 대로 알아들은 것이다.

   
▲ 김영권이 지난 1일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을 앞두고 전날 이란전 직후 자신의 말실수에 대해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대한축구협회

김영권의 인터뷰는 “관중 소리가 커 소통이 힘들었다” “소통이 안돼서 답답했다”로 둔갑됐다. 기대한 만큼 실망도 컸다. 이란전은 졸전이었다. 후반전엔 수적 우위에 있었음에도 유효슈팅조차 단 한 개가 없었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했으리라. 흥미진진한 기사를 만들어 내기 위해 김영권의 인터뷰를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인심은 때론 야박하다. 맘에도 들지 않고 화도 났는데,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다. 여지없이 김영권에게 분노의 화살에 꽂혔다.

김영권은 그날 밤 죽었다. 인격살인을 당했다. 기레기라는 말, 자존심이 상하지만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필요에 의해,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클릭수 올리기 위해, 돈 벌기 위해 그래서 나 살자고 함부로 펜을 놀리기 때문이다. 나 살자고 남 죽이는 펜, 그래서 기레기다. 

‘이것, 반응이 오네’라 판단하면 어뷰징 기사가 쏟아진다. 검색어 상위 순위에 오른 키워드에 꿰맞춰 기사를 만들어 낸다. 어뷰징 기사. 간단히 말하자면 베껴 쓰는 기사다. 똑같이 베껴 쓸 순 없으니 더 과장되게, 더 자극해서 쓰기 마련이다. 아마도 그날 밤과 다음 날 오전 사이 쏟아진 ‘관중탓’ 기사의 상당수는 김영권 인터뷰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썼으리라. 불나방이 꼬여들 듯.

대한축구협회는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카메라 앞에 김영권을 세웠다. 그래서 김영권은 두 번 죽었다. 잔인한 장면이었다. 억울함에, 답답함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을 김영권이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그저 ‘죄송하다’는 사과밖에 할 수 없는 상황, 무조건 사과해야 하는 그 카메라 앞에 세워져 김영권은 전국민을 상대로 자신을 책망했다. 아마도 높으신 분들은 기대했으리라 김영권이 카메라 앞에서 죽어야 잠잠해지리라고. 불붙는 여론에 기름 끼얹기. 그렇게 27살 청년 국가대표 선수는 제물로 바쳐졌다. /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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