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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히딩크에 퇴짜 맞고 스페인 진출?
박재림 기자  |  jamie@football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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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13  02: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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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싱 이호진이 프리메라리가 데뷔전에서 비야레알 리켈메(노란색 유니폼)를 마크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이호진

아인트호벤 테스트 탈락 후 라싱 입단
데뷔전 리켈메-카솔라 상대하며 호평
“선수 은퇴 후에도 계속 도전하는 삶”

▶ <14년 전 슈틸리케 울린 ‘이호진’ 이야기>에서 계속

[축구저널 박재림 기자] 2003년 20세 이하(U-20) 월드컵 독일전(2-0 승) 결승골의 주인공 이호진은 이후 유럽리그에서 프로선수로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다. 안더레흐트(벨기에) 볼튼(잉글랜드) 올랭피크 마르세유, 낭시(이상 프랑스) 아인트호벤(네덜란드) 등에서 입단테스트를 받았다.

그 중 가장 가능성이 높았던 곳은 역시 아인트호벤이었다. 2005년 12월 클럽하우스 생활을 하며 테스트를 받았다. 당시 아인트호벤은 박지성, 이영표는 다른 팀으로 이적했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원래 테스트 기간은 일주일이었지만 한 달 넘게 연장됐다.

그 사이 필립 코쿠, 제퍼슨 파르판, 알렉스, 에우렐류 고메즈, 다마커스 비즐리 등 아인트호벤 선수들과 친해졌다. 이호진은 “코쿠가 ‘크로스 베리 굿’이라고 칭찬해줬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 TV나 컴퓨터 게임으로만 보던 유명 선수에게 인정을 받았으니 얼마나 좋았겠느냐”며 웃었다. 

다소 거친 플레이스타일 탓에 히딩크 감독에게 크게 혼나기도 했다. 이호진은 “그때 비즐리가 부상 회복 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내 태클이 깊었다고 히딩크 감독님이 한마디 했다. 어린 마음에 대드니까 감독님이 곧바로 정강이를 세게 찼다. 너무 아파서 곧장 ‘쏘리 쏘리’ 했다”며 당시를 추억했다. 

장기간 테스트에도 결국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실망이 컸던 이호진은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다 프리메라리가 라싱 산탄데르에서 연락이 왔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테스트에 임했고 3년 계약서에 사인했다. 2006년 1월 31일, 겨울이적시장 마지막 날이었다. 아인트호벤 지역신문은 ‘왜 이호진을 놓쳤냐’며 비판 기사를 썼다.

   
▲ 2006년 1월 라싱 산탄데르와 계약하며 한국인 2호 프리메라리그 선수가 된 이호진. /사진 제공 : 이호진

즉시전력감으로 라싱에 영입됐으나 계약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부상이 도졌다. 리그 최종전에서야 기회를 얻었다. 상대는 당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빛나는 비야레알. 왼쪽 측면 수비수로 선발 출격한 이호진의 마크맨은 스페인 신성 산티 카솔라(아스널)였다. 

이호진은 카솔라, 후안 로만 리켈메(아르헨티나) 등 상대 주력 선수들을 막고 공격 땐 적극적 오버래핑으로 찬스를 만들었다. 측면 돌파 후 슛은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팀은 0-2로 졌지만 이호진은 큰 박수를 받았다. 경기 종료 후 이탈리아 축구스타 알레시오 타키나르디와 유니폼을 교환했다. 비야레알 원정경기를 마치고 돌아오자 라싱팬들이 ‘호베르투 카를로스(브라질) 같았다’며 엄지를 세워보였다. 

그러나 라싱은 다음시즌 남미 선수 영입을 위해 이호진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그렇게 스페인 생활을 마무리했다. 비록 1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동료들과도 추억을 쌓았다. 필리페 멜루(브라질) 에세키엘 가라이(아르헨티나) 등과 친하게 지냈다. 

“멜루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았죠. 처음 만나자마자 ‘리(Lee), K리그에서 뛴 브라질 선수 산드로, 도도, 마그노는 얼마나 잘했어?’라고 묻더군요. 멜루는 늘 브라질 대표 선수가 될 거라고 호언장담했는데 몇 년 뒤 정말 대표팀에서 뛰고 있어서 놀랐죠. 가라이는 2007년 피스컵 때 한국에 와서 다시 만났어요. 그때 나이트클럽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데려갔죠(웃음).”

스페인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와 인천 유나이티드와 계약했지만 부상으로 1경기도 뛰지 못했다. 그 후 핀란드(위바스퀼라) 폴리스 유나이티드(태국) 등 다시 해외로 나갔다가 2011년 내셔널리그 고양 국민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2012년부터 육군 3사단 ‘백골부대’ 일반병으로 군생활을 했다. 

   
▲ 이호진은 선수 은퇴 후 축구인생 후반전을 보내고 있다.

2014년 전역 후 더 이상 축구선수가 아니라는 사실에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다. 혹시 알아볼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요즘 뭐하냐’는 질문을 받을까 두려워 밖에선 늘 땅만 보고 다녔다. 명절 때 친척을 만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결국 축구가 치유법이었다. 에이전트, 지도자 등 축구와 관련된 일을 다양하게 경험했다. 2015년 C급 지도자 라이선스를 딴 뒤로는 서울 중랑구 집 근처 초등학교 취미반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호진은 “학생들은 내 선수 시절을 모른다. 그저 축구 가르쳐주는 아저씨일 뿐”이라고 웃으며 “어린 친구들을 가르치면서 나도 많은 걸 배운다”고 전했다. 

“선수 시절 유럽에서 성공하겠다는 꿈 하나로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네 주제에 무슨 유럽이냐’라는 비아냥도 많았지만, 그래서 더 보란 듯 해내고 싶었어요. 테스트 통과 여부를 떠나 언제나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축구인생 후반전도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있죠. 장애인 축구교실 등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앞으로도 제 인생 모토는 도전, 그리고 또 도전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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