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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차다가 딴생각] 승패의 문제가 아닌데
최승진 기자  |  hug@football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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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20  09: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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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된 날 잉글랜드 리버풀 구단이 한국어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사진.

[축구저널 최승진 기자] 후배 한 명이 출근을 안 했습니다. “왜 안 나와, 어디야?” “고등학교 축구 취재 가는데요.” “사무실 왔다가 간다고 하지 않았냐?” 잠깐 뜸 들이며 눈치를 살피는 듯하더군요. “오늘 나라에 큰 경사도 있고 해서….” 지난 10일 오전 11시 21분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말을 들은 지 두어 시간 뒤였습니다.

파면 선고 직후 8-0이 화제가 됐습니다. 헌법재판관 8명 모두 탄핵에 찬성한 결과를 놓고 ‘스코어’에 방점을 찍은 메시지가 온라인에 넘쳤지요. ‘히딩크는 5-0으로 시작했지만 박근혜는 8-0으로 끝났다’는 한 SNS 글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대표팀을 맡고서 두 차례나 5-0이란 큰 점수 차로 지며 지탄을 받았습니다. 이런 시련이 2002년 4강 신화의 밑거름이 됐지요. 불안하게 시작했지만 위대한 성과를 거둔 축구 지도자와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참담하게 끝난 국가 지도자를 딱 한 문장으로 절묘하게 대비했더군요.

눈길을 끈 사진도 있었습니다. 한 방송사 아나운서는 자신의 SNS에 외국인 축구팬이 8-0이라고 적힌 천을 들고 있는 사진을 올려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잉글랜드 리버풀 구단은 한국어 페이스북 페이지에 10년 전 챔피언스리그에서 터키 베식타스를 8-0으로 이겼을 때의 전광판 사진을 실었습니다. 과거 8-0 스코어가 나온 축구와 야구 경기를 쭉 살펴본 기사까지 나왔지요. 유쾌한 패러디였습니다.

그런데 이틀 뒤 청와대에서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기에서 한 번 졌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섬뜩했습니다.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는 말이 “다음에는 이기겠다”라는 말로 들리더군요. 촛불로 상징되는 대부분 국민을 상대로 다시 경기에 나서 설욕전을 펼치겠다는 의미로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정당당하게 경기를 해서 진, 그래서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패자가 아닙니다. 무능력과 무책임이 밝혀진 지도자, 범죄 피의자일 뿐이지요. 지난 주말 몇몇 K리그 경기 승장과 패장 인터뷰를 살펴보다가 잠시 딴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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